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두 개의 바퀴(218p)
인간 사회는 정치와 경제라는 두 개의 바퀴로 움직이고, 두 개의 바퀴가 균형을 이룰 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정치와 경제의 균형이 깨질 때 사회는 붕괴의 길을 걷고, 그 사회 속의 인간은 병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제학은 돈의 배분 문제가 주요 연구 대상인 학문으로, 현실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목표이고, 경제와 분리될 수 없는 정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수준이 자본주의의 격을 결정한다.' 교수님이 경제학을 공부하며 얻은 깨달음에 공감이 간다. 경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정치의 영역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의 배경과 원인을 밝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소득 강화와 사회금융 복원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자산 불평등과 민주주의(34p)
은행법 제1조에 의하면, 은행은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정부에 의해 영업인가를 받은 기업임을 규정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은행 신용을 이용하지 못하는 많은 국민이 자신이 못나서, 즉 신용등급이 낮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는 금융 자본의 논리에 세뇌당한 결과이다.
은행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공공금융의 성격을 갖는다. 최소한의 사회소득에 대한 기본권리와 더불어 최소한의 사회금융에 대한 기본권리 모두 정치와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모든 국민에게 사회몫의 형태로 배분되는 돈은 정치의 산물이고, 개인몫으로 배분되는 돈은 시장(경제)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그렇다면 누가 정치를 외면하거나 경제와 분리하여 사고하길 원하는 것일까? 정치 영역을 최소화한다는 것은 사회몫, 즉 사회소득과 사회금융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최소화하려는 것이고, 사회몫을 추구할수록 (돈의 힘이 지배하는) 개인몫이 커지기 때문이다.
자산 불평등은 민주주의가 금융 자본에 의해 잠식된 결과이다. 은행시스템의 잘못된 설계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실패이자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은 결과이다. 그리고 불평등의 증가는 다시 민주주의 체제의 사회적 구조를 위협하고 세금을 통한 전통적 형태의 재분배조차 망가뜨린다. 자산에 대한 세금을 회피하는 것은 자산을 축적하려는 자산가들의 기본 욕망이기 때문이다. 감세의 혜택은 세금 부담이 큰 부유층에게 집중된다. 재정이 줄면 공공서비스 축소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서민에게 귀착된다.
공공금융(55p)
'돈의 흐름(금융)'을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사회는 순식간에 야만화 되고 그런 사회는 지속이 불가능하다. 화폐경제 시대의 경제 문제는 '돈의 배분' 문제로 귀착한다. 함께 생산한 생산물은 대부분 화폐로 표현되고, 그 생산물의 배분은 결국 돈의 배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께 생산한 사회적 생산의 배분을 어떻게 시장에만 맡길 수 있다는 말인가.
공공영역에서 금융을 분리하여 시장(민간) 금융 중심으로 바꾼 것이 이른바 금융화였고, 그 결과는 공공영역의 축소로 이어졌다. 재정 지출 최소주의, 감세, 작은 정부, 그리고 불평등의 심화 및 가계 부채와 정부 채무의 급증 등이 그 산물이다.
왕조 말기의 '국빈민곤' 시대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토지 소유 집중이 극심해져 경작 토지를 잃은 백성은 권문세가의 사적 예속민으로 전락한 결과 세원이 줄어든 왕조는 빈곤해지고 백성은 곤궁해진다. 사회 내부적으로 토지개혁 등이 제기되었지만 대개 실패하고 역성혁명으로 왕조가 교체된 것은 그만큼 돈을 움켜쥔 기득권층의 양보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공금융이 실종하고 일반 국민이 민간금융의 먹잇감으로 전락하자 세상은 돈의 힘이 지배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가 극도의 불평등이고, 특히 한국에서는 개인의 토지 소유 집중은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을 의미)가 0.8을 이미 오래전에 넘었을 정도인데, 이는 0.6도 되지 않았던 조선왕조 말기와 비교된다.
사회가 붕괴한 대한민국(125p)
<소득 격차(2021년 기준 소득활동자는 약 2,500만 명)>
- 상위 60%선: 2,180만 원(최저임금 기준 연소득 2,187만 원)
- 하위 41%(약 1,040만 명): 평균소득 980만 원
- 상위 0.1%(약 2만 5천 명): 평균소득 18.5억 원
상위 60%선이 최저임금 기준을 미달하고, 상위 0.1%(2.5만 명)의 총소득 46.9조 원은 하위 29%(745.4만 명)의 총소득 46.7조 원을 앞지른다.
<자산(토지) 격차(2022년 기준 약 2,371만 세대로 구성), 150p>
- 상위 0.62%(14.6만 세대)가 보유한 토지가액: 943.4조 원
- 85%(2,018만 세대)가 보유한 토지가액: 949.7조 원
- 38%가 넘는 901만 세대는 땅을 한 조각도 갖고 있지 못함
대한민국의 사회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사회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집'이다. 먹을 것을 나눠먹고 비바람을 함께 피하고, 아프면 서로 돌봐주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갖지 않게 해주는 더불어 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고독사가 청년층에까지 확산하고 있다.
모두가 참여해서 사회적 생산액(GDP)을 만들었는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집은 함께 사는 집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사회가 붕괴한 나라이다.
사회적 생산액을 만들어내는데 참여하고 기여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 소득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John Stuart Mill)에서 생산과 배분을 앞부분에서 다루고 있는데, 함께 만들어낸 생산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인간 생존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고, 생산의 궁극적 목적은 배분에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150p, 92p)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구조는 대한민국의 힘의 역학 구조와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돈을 중심으로 세력의 이해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부동산이 가치 창출 활동보다 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자원 배분과 국민 경제의 왜곡이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가계 소득과 일자리 등이 증가하고, 또 인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가치의 증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그러나 돈이 가치 창출 활동보다 부동산 투기로 몰리면 경제 성장은 둔화하고, 그에 따라 가계 일자리나 소득 증가도 둔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
부동산에 유입된 돈들은 부동산 가치가 계속 상승하기를 원하고, 주택을 공급하는 건설회사나 돈놀이하는 금융회사 등은 부동산 시장에 돈이 계속 유입되기를 원한다. 문제는 가계 일자리나 소득이 정체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에 돈이 계속 유입되려면 가계의 미래소득(부채)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순환구조는 상대적으로 단기적 수익 추구에 매몰된 금융 자본이 주도한다.
재벌 자본과 금융 자본을 중심으로 공적 영역에서는 모피아*와 검찰 권력이, 사적 영역에서는 언론과 대형 로펌, 심지어 조폭 등이 연결망을 구성했다. 기재부를 중심으로 기재부의 직간접 영향력 아래 있는 국토부-한국은행-금융위원회-국세청 등이 재벌 자본과 금융 자본의 이해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언론은 유리한 여론을 조성해 주고, 검찰과 대형 로펌들은 법적 방어막 및 지원 역할을 한다. 그 대가로 퇴임 후 재벌 기업과 대형 로펌, 금융 회사 등을 비롯해 유관기관의 자리를 꿰차고 로비하다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재벌 건설회사와 금융회사는 언론과 대형 로펌의 주요 수입원이자 고객 역할을 한다. 재벌과 건설회사는 언론을 직접 소유하기도 한다. 부동산 카르텔이 정권 위에 존재하는 이유이고, 이 카르텔의 공적 대변기구인 모피아가 정권을 넘나드는 이유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모피아는 영원하다."
대한민국이 갈 길(159p)
2021년 기준 대한민국 소득창출 활동자는 2,536만 명이다.
기계적 중산층(상위 30% ~ 하위 30%)의 세후 연 소득은 4,076 ~ 1,484만 원에 불과했다.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340 ~ 124만 원 정도이다.(상위 20%선의 세후 월 소득은 444만 원) 이들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까?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한 마디로 소비할 여력이 없다. 시장을 통한 경제활동으로 취득할 수 있는 대다수 국민의 소득은 너무 취약하다. 문제는 시장소득이 작은 상황에서 사회소득조차 낮다는 사실이다.(2020년 기준 OECD 38개국의 조세부담률 31위) 현재 대한민국은 소득과 자산이 소수에게 너무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몫과 개인몫 간에 균형을 위한 증세와 사회보장의 내용과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 상위 0.1%의 연소득: 18.5억 원 / 납부세금: 6.5억 원(세후 월 1억 원의 소득 발생)
- 50%선의 연소득: 2,660만 원 / 납부세금: 30만 원(세후 월 219만 원의 소득 발생)
상위 소득자는 추가 세금을 부담할 여력이 있지만, 대다수는 소득이 너무 낮은 게 현실이다. 따라서 사회몫을 늘리는 길밖에 없다.
<전체 소득활동자 2,536만 명에게 연 100만 원을 사회소득으로 지급(필요재원: 25.4조 원)>
ex1) 각 소득자가 납부하는 실제 세율대로 배분할 경우,
상위 0.1%는 세후 연 소득이 약 10억 원이 되고, 전체 소득활동자의 84%는 순소득이 증가한다.
특히 하위 50%는 순소득이 90 ~ 100만 원까지 증가한다.
상위 15%선 소득자(6,270만 원)의 경우 순소득 감소가 10만 원으로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초고소득층이 사회소득에 필요한 재원의 대부분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ex2) 상위 0.1%의 법인: 세후 수입 3조 1,367억 원, 추가 세부담 154억 원
10%선에 있는 법인: 세후 수입 543억 원, 추가 세부담 2.4억 원
50%선에 있는 법인: 세후 수입 4.7억 원, 추가 세부담 171만 원
대부분의 세부담은 수입이 큰 법인에게 돌아간다. 그만큼 수입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토지에 적용하면 대부분 가계는 최소 연 300 ~ 400만 원의 사회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 사회소득 강화에 따른 효과는 가계의 소비여력 강화로 경제 성장, 일자리 증가, 소득 불평등의 개선, 부동산 투기에 따른 기대 불로소득이 낮아짐으로써 투기 완화, 세금을 거두어 바로 국민에게 배당하면 재정 관료의 개입 차단, 저소득층이 가장 큰 혜택을 입음으로써 최저임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교육혁명(180p)
강 생태계에 사는 생명체와 사막 생태계에서 사는 생명체가 다르듯, 제조업 생태계와 디지털 생태계는 전혀 다른 인간상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의 인간상이 다르듯, 이 역시 정치의 과제이다.
제조업 중심의 압축성장을 한 대한민국의 경우, '정해진'답을 빨리, 정확히 찾는 능력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한민국이 로봇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노동력 1만 명당 로봇 도입 대수)은 많은 노동력이 로봇으로 대체 가능한, 반복된 숙련을 수행하는 노동력임을 의미한다. 디지털 생태계에 필요한 인간상은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 모피아(MOFIA, 87p)
재무부(MOF)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로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들이 정계, 금융기관 등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면서 그들의 이익, 곧 개인과 조직의 사익을 취해 국가 경제정책을 뒤흔든다는 비판이 담긴 말이다.
- 불환화폐(Fiat Money, 100p)
불환화폐의 가치는 정부가 보증하는 것이다. 정부 보증의 힘은 정부 경제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정부 경제력은 세금 수입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국민 전체가 불환화폐의 가치를 함께 보증한 것이다. 사회의 국민 전체가 함께 보증한 신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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