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약하면 곧 뒤처져버리는 정글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소설 속 평가가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이 경쟁 사회에서 남들보다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는 가족과의 관계나 행복 따위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책을 읽는 동안 최배근 교수님의 사회소득의 필요성이 자꾸만 떠올랐다.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자리하고 있던 이 책은 저자의 첫 작품을 먼저 읽고 나서 관심이 생겨 구입했다. '편의점이 불편하다'는 제목보다는 망원동 브라더스를 쓴 작가의 글이라는 점에 흥미가 생겼다. 두 작품의 차이는 대략 10여 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살아가기에 더 팍팍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책장은 금방 끝까지 넘어갔고 독고가 떠나고 난 뒤의 always편의점 이야기(2편)가 궁금해졌다.
교사 연금으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염여사는 장사가 잘 되지 않는 편의점을 유지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시현, 재취업이 어려운 50대이자 두 아이의 가장 성필 등 염여사 하나만을 위한 사업장이 아니라 직원들의 생계가 걸린 곳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들기 어려운 할머니들에게 무료로 배달을 해주는 독고, 다른 편의점의 점장으로 스카우트된 시현 등 소설 속 표현대로 참으로 가지가지하는 편의점 알바생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겪는 인생을 들여다보며 웃고 울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덩치가 곰 같은 독고가 기억을 찾고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떠나면서 첫 번째 편의점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소통에 서툰 우리(108p)
독고에게 아들과의 문제를 하소연하던 선숙은 조금씩 마음이 풀린다.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
"아들말도 들어줘요. 그러면 풀릴 거예요. 조금이라도."
그제야 선숙은 자신이 한 번도 아들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들의 탈선에 대해 따지가 바빴고, 그 이유 따위는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아들한테 그동안 못 들어줬다고, 이제 들어줄 테니 말해달라고 편지 써요. 그리고 거기에 (게임하면서 먹기 편한) 삼각김밥 올려놔요."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흙수저 가장(115p)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성실하게 살아온 마흔넷 인생이었다. 그저 그런 대학을 졸업한 후 재주도 별 볼 일 없는 걸 알기에 성실함과 친절함을 무기로 싸워나갔다. 거래처에서 만난 네 살 어린 아내와 결혼하고 쌍둥이를 낳았을 때는 흙수저의 수저질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생각했다. 금수저를 쥐고 태어난 놈들보다 값진 인생이라 자부하던 시절도 있었다.
시간은 그 차이를 알려주었다. 스타트라인부터 앞선 놈들은 해가 거듭할수록 여유가 생겼고 능력과 돈을 축적할 수 있었다. 반면 경만은 탄약이 고갈되어 곧 맨몸으로 돌진해야 하는 참호 속 병사가 된 심정이었다. 아무리 벌어도 써야 할 돈은 늘어만 가는데 자신의 체력은 갈수록 깎여나가는 게 느껴졌다. 유일한 장점이던 성실함과 친절함의 바탕은 체력이었고, 나이가 들어가며 딸리는 체력은 성실함과 친절함을 무능력과 비굴함으로 변화시켰다.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나? 젊을 때는 실수를 해도 만회할 힘이 있었고, 숙취에 절어도 뜨거운 물 샤워 한방에 털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회복탄력성은 그의 인생에서 빠르게 휘발되고 있었다. 경만은 참치김밥 남은 조각을 꿀꺽 삼킨 뒤 참깨라면을 후루룩 마셔버렸다. 남은 반 잔의 소주도 따라 비웠다. 그렇게 하루의 유일한 자유에서 로그아웃한 뒤 자리를 정리했다.
가족이라는 손님(251p)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닌가?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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