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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책의 초반부터 중간까지 저자의 이야기와 어느 분류학자에 대한 추적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데, 이전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페이지가 중반 이후로 넘어갈수록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다는 유혹을 견디기 어려웠다. 두 번째 읽었을 때, 저자의 프롤로그가 이해되었고 각 챕터의 시작을 알리는 그림 속 의미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과학 기자인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 7살의 저자는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54p)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 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그 나이에 인생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나는 밀린 숙제와 입시 준비에 바빠서 ‘인생’을 생각해 볼 여유는 없었다. 아버지의 무시무시한 현실적 조언 탓이었는지 저자는 유년시절부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언니의 상처는 곧이어 자신에게도 이어지며 16세에 자살 기도를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대학에서 곱슬머리 남자에게서 절대 없을 것 같던 ‘안식처’를 찾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7년 차에 한 여성과의 관계를 맺는 실수로 남자친구와는 헤어지고 삶은 다시 무의미해지게 된다.

 

저자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겠다는 신념으로 가장 암울할 때도 전진했던 과학자를 알게 되고, 그 비결을 찾기 위해 그가 남긴 회고록, 에세이, 시, 저널 등을 뒤져 보기 시작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새로운 종을 찾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지구를 항해하며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1/5을 동료들과 함께 발견했다. 1906년 캘리포니아 대지진이 발생하여 조던은 실험실의 수백 개의 표본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혼돈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나뒹굴던 물고기와 이름표들을 하나씩 바늘로 꿰매 붙이는 작업을 묵묵히 이어간다.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주인은 혼돈이라고 생각한 저자는 지구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조던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한 과학자에 대한 찬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대지진 이후에 조던의 에세이에서 하나의 문장을 찾아낸다.(132p)
 

엄청난 규모의 재앙 앞에서 그렇게 푸념하지 않는 인간을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평범한 한 남자가 자신에게 그토록 희망차고 그토록 용감하며 그토록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는 모습을 보여준 일은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결국 살아남는 것은 사람이고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자연이 이미 만들어 놓은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라던 과거의 논리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저자는 비범할 정도의 성공적 인생을 살았던 그의 자기기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조던의 중년 이후의 인생을 계속 추적한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의 학장 자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회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았고 이후의 인생은 우생학(Eugenics: 우월한 종과 부적합한 종으로 나누어 부적합한 집단을 말살시켜 유전적 질을 향상할 수 있다는 학문)의 전파에 힘을 쓰게 된다. 놀랍게도 나치 이전에 미국 인디애나주를 시작으로 우생학에 근거한 부적합자(성적으로 문란하다고 판단된 젊은 여성, 멕시코, 이탈리아, 일본 이민자 자녀,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흑인 여성)들에 대한 강제 불임화의 합법화가 진행된다. 저자는 자국의 교육과정 가운데 미국이 우생학 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배우지 못한 점을 믿기 어려워한다. 심지어 하버드부터 스탠퍼드, 예일, 캘리포니아 버클리, 프린스턴까지 전국의 모든 명망 있는 대학들에서 우생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물론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가난, 방탕, 문맹, 범죄성 등 우생학자들이 불임화로써 근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특징들에서는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과학적 이견도 쌓여갔다.
 

데이비드가 놓쳐버린 결정적 사실(197p)

<종의 기원-다윈> 한 종을 강력하게 만들고, 그 종이 미래까지 지속하게 해 주며, 혼돈이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약탈자, 해충의 침략 등 가장 강력한 형태의 타격을 가해올 때도 그 종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다윈은 변이를 꼽았다. 동질성은 사형선고와 같다. 한 종에서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 종이 자연의 힘에 취약하게 노출되도록 만들어 위험을 초래한다.
그가 보기에 위험한 것은 인간의 눈에서 비롯된 오류 가능성,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이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외부 형질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자연은 외양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자연은 모든 내부 기관과 모든 미세한 체질적 차이에, 생명의 전체 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던의 우생학 운동에 관한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저자는 조던에게서 혼돈을 이길 방법을 찾는 것을 멈춘다. 혼돈을 이길 방법은 없고,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 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 따위도 없다고 희망을 놓아버린 저자는 다시 길을 잃는다.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할까?”
 
저자는 몇 달을 수소문한 끝에 버지니아주의 한 수용소에서 갇혀 지낸 애나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열아홉 살 때 그 수용소에서 자신의 의지에 반해 불임화를 당했다. 애나가 부적합자로 판명된 이유는 낮은 지능검사 점수와 부모의 가난 때문이었다. 처참한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자매처럼 지내며 서로를 돌보는 메리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리고 불임화를 당한 데 대해 애나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해 동안 무임금으로 싸웠던 변호사, 그들을 위해 저녁을 만들어주는 교회 사람들 등 자신들의 수호천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자는 깨닫게 된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을 보게 된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그물망을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민들레 법칙(226p)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가 된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 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한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마침내 저자는 아버지에게 할 반박의 말을 찾아낸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235p)

1980년대에 분기학자들은 종들이 거쳐 간 시간의 흐름을 가장 신빙성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공통의 진화적 참신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롭게 추가된 특징들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더듬이, 반짝이는 노란 지느러미 같은 업그레이드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그 새로운 특징을 따라 생물들이 거쳐 간 다양한 버전들을 추적할 수 있고, 시간의 화살이 어느 길을 가리키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고, 더 큰 확신을 갖고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 단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쥐는 날개가 달린 설치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낙타와 훨씬 더 가깝고, 고래는 실제로 사슴이 속한 유제류이며, 새들은 공룡이고, 버섯은 식물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동물에 훨씬 가깝다는 사실들이다.

다음 중 나머지 둘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소, 연어, 폐어>

흔히 물고기와 가장 다른 소를 선택하겠지만, 폐어와 소는 둘 다 호흡을 하게 해주는 폐와 유사한 기관이 있지만 연어에게는 없다. 폐어의 심장은 연어의 심장보다는 소의 심장과 구조가 더 비슷하다. 우리가 어류에 대해 해온 일은 수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어류”라는 하나의 단어 아래 몰아넣은 것이다.

 

과학적으로 좀 더 논리적인 일은 어류란 내내 우리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242p)

 
그렇다면 일반인들에게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할까?

룸메이트 헤더는 코페르니쿠스를 예로 들며 중요성에 동의한다. 그 시대 사람들은 별을 올려다보며 별이 움직인다고 믿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별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별들을 포기했을 때 그는 이단이라는 판결을 받았다.(247p)

 
그동안 내가 사실이라 믿었던 범주들을 의심하면 무엇을 얻게 될까? 그때 진짜 세상이 보이지는 않을까? 당신이 물고기를 포기하게 되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끝으로 저자는 자신이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를 고백한다.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체격이 아주 작고, 나보다 일곱 살이 어리며, 자전거 경주에서 나를 이기고, 툭하면 나를 행해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26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