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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유시민

 

여전히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내란성 불면증 때문에 피곤하고 불안과 분노에 휘둘려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시기였다. 이런 혼란 속에서 깨어 있는 국민들에게 '신경 안정제' 역할을 하고 계신 유시민 작가님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유 작가님의 책이라면 언제든 고민 없이 책장을 펼칠 수 있지만, 이 책은 한동안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과학 공부라는 제목 때문이었을까? 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과학이 점점 재미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책 뒷면에 적힌 "내 삶을 어떤 의미로 채울 것인가?"라는 물음이 눈길을 끌었다. 작가님은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을 이해하거나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을 공부하고서야 그 답을 찾았다고 밝히셨다. "내가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존재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내가 누구이고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고민했다고 하신다.
 
작가님은 생물학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을 찾았고, 그로 인해 의미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남은 시간에 어떤 의미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삶이 의미는 무엇인가?(127p, 157p)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 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나는 스스로 자유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사는 게 바람직하다고 한 철학자 밀 J.S.Mill(1806~1873)을 좋아한다. 유전자는 유전자, 나는 나다. 유전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유전자가 만들어낸 나는 생각한다. 둘은 차원이 다르다. 유전자는 복제할 뿐이고, 나는 인생을 나름의 의미로 채우며 살아간다. 나보다 오랜 산다고 해서 유전자가 부럽지는 않다.

 

존재의 의미(256p)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묵시록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나는 러셀의 말에 공감한다. 신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엔트로피 법칙은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 우주에는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오래간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존재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 우주에도 자연에도 생명에도 주어진 의미는 없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진다. 길든 짧든 사람한테는 저마다 남은 시간이 있다. 나는 그리 길지 않을 시간을 조금 덜어 이 책을 썼다. 쓰는 동안 즐거웠다. 남들과 나누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전부다.

 

나는 누구인가?(47p)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만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의 질문이다. 묻고 대답하는 사유의 주체를 철학적 자아라고 하자.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인 몸에 깃들어 있다. 나를 알려면 몸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명제로 확장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 인문학은 과학의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

 

나이가 들면 현명해질까?(99p)

뇌에 깃든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쉼 없이 흔들리고 부서지고 비틀리는 가운데 스스로를 교정하고 보강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견딘다. 자유 의지는 그런 자아가 지닌 것이다. 자아가 불안정한데 자유의지가 어찌 강고하겠는가. 모든 전향을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본다면 자아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자아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나이가 들수록 보통은 어리석어진다. 우리 몸의 하드웨어는 20대에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내리막을 걷는다. 뼈, 근육, 관절, 시력, 청력이 다 그렇다. 뇌세포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뇌의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달리 더 더 늦게까지 스스로를 개선한다. 학습과 경험을 통해 뇌가 획득하는 데이터는 노년기까지 계속 증가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성능 개선과 데이터 증가 효과가 하드웨어 퇴화로 인한 기능 저하를 상쇄하는 동안은 더 지혜로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화로 인해 하드웨어가 심하게 나빠지면 소프트웨어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한다. 기존 데이터를 상실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신규 데이터 유입은 줄어든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보다 덜 똑똑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덜 똑똑하다. 그렇지만 앞으로 더 어리석어질 것임을 알 정도로는 똑똑하다.

뇌 과학자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말이다. 물질이 아닌 자아가 물질인 뇌를 바꾼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내 뇌는 매 순간 퇴화하고 있다. 내 자아는 날마다 어리석어지는 중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어지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나 자신을 무한정 믿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뇌피질의 신경세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드는 때가 올 것이다. 이미 그런 상황인데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 갑자기 어떤 신경전달 물질이 과도하게 나오거나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뇌가 자신을 이해하는 일에 관심을 접고 오로지 생존에만 집착하는 날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전에 세상을 떠나면 좋겠지만 그것도 원하는 대로 되진 않는다. 나는 욕심 많고 인색하고 어리석고 보수적인 노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하는, 더 젊은 내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부정하는 언행을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뇌의 하드웨어 퇴화로 인해 벌어진 신경생리학적 사건으로 여겨 주기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 말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동정해 주기를 바란다. 내 자아가 오늘의 상태를 유지하는 한, 어떤 경우에도 자유의지로 그런 변화를 선택하지는 않을 테니까.

다시 강조한다.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에서 해일과 폭풍우를 맞으며 서 있다. 흔들리고 부서지고 퇴락해 사라질 운명이다. 자유의지는 그런 곳에 기거한다. 있다고 말하기엔 약하고 없다고 하기엔 귀하다.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확인하지 못하겠다. 뇌과학을 조금 알고 나니, 나를 포함해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기엔 흉하고 절멸하기에는 아깝다. 그 운명이 어찌 될지 나는 알지 못하고 책임질 수도 없다. 단지 나 자신의 삶 하나를 스스로 결정하려고 애쓸 따름이다. 악과 누추함을 되도록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남은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자. 이것이 내가 뇌과학에서 얻은 인문학적 결론이다.

 
단단하지 않은 자아와 그곳에 기거하는 자유의지.
유작가님의 설명을 듣고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살아오면서 불안정한 자아를 채찍질하며 괴로워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더라도 실망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금 덜 어리석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처럼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하며,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여행을 떠나리라.
작가님은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 역시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이해했다고 말씀하신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136p)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인간의 본성을 잘못 본 데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사회제도는 변하기 어려운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충돌하면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사유재산을 폐지한 게 대표적이다. 그게 도덕적으로 나쁜 정책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도덕적 평가와 무관하게, 사유재산 제도를 폐지한 사회체제는 장기 존속할 수 없다는 말이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 소개한 동물 개체군의 행동 패턴 분석 모델을 보고 더 분명하게 알았다. 그렇게 단순한 이론으로 역사의 격변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ESS모델(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ESS는 어떤 군집의 대다수 개체가 일단 선택하면 다른 모든 전략을 능가하는 전략이다. 자연선택은 ESS를 벗어나는 전략을 징벌한다. 때로는 둘 이상의 전략이 ‘집단적으로 안정한 전략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항상 배신’이라는 안정점과 TFT(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또는 상대방을 믿고 협력하지만 배신행위는 응징하는 전략)라는 안정점이 공존하는 쌍안정 시스템이 있을 수 있다. 우연히 먼저 우위를 차지하는 전략이 일단은 우위를 유지하지만 또 다른 우연으로 우위가 바뀔 수도 있다.

소련 공산당은 모든 권력을 완전히 독점했다. 공산당은 모든 기업을 국가 소유로 만들었고 농촌을 사회주의 집단농장으로 개조했다. 평등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만인에게 일자리를 주었지만 열심히 창의적으로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동일한 보상을 주었다.

‘성실’은 사회주의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특별한 보상을 받지 못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 전략이다. ‘태만’은 직장에서는 표 나지 않게 게으름을 피우고 퇴근한 뒤에 텃밭 농사와 가사 노동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어느 쪽이 적응의 이익을 클까? 달리 표현하면, 어느 전략이 생존에 유리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태만’이었다. ‘성실’하면 건강을 해치고 일찍 죽었다.

결과적으로 ‘태만’이 소련이라는 인간 군집의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 되었다. ‘성실’과 ‘태만’이 공존하는 ‘쌍안정 시스템’이라도 되었다면 체제가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련의 권력자들은 문제를 직시하지 않았다. 인간 심리와 행동의 밑바닥에 생물학적 제약조건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기심과 가족에 대한 집착 같은 성향은 사적 소유를 토대로 한 계급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사회구조를 바꾸고 교육을 실시하면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소련은 철강과 석유 생산량이 세계 1위였는데도 물자와 에너지가 부족했다. 곡물 생산량이 세계 1위였지만 해마다 사료를 대량으로 수입했다. 인구 대비 의사와 병상 수가 세계 1위인데도 의료서비스 공급이 부족했다. 혜성을 추적하는 로켓은 잘 만드는데 가정용 전기 제품은 품질이 형편없었다. 국민 대다수가 ‘태만’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사회는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소련은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졌다.

 

기후위기(185p)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은 온실가스다. 온실효과를 내는 가체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비중이 가장 크다. 분자 화합물인 두 기체의 중심 원소가 바로 탄소다.

탄소는 어디서 왔을까?

어디서 온 게 아니라 원래 지구에 있었다. 다른 곳에 다른 형태로 있던 탄소가 풀려나 산소, 수소와 결합한 탓에 기후위기가 생겼다. 화산 폭발, 자연발화 산물도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나무를 에너지원으로 썼고, 석탄을 파냈으며, 석유를 뽑아 썼다. 인간이 집을 데우고 자동차를 굴리고 비행기를 띄울 때마다 탄소가 풀려났다. 소와 양, 돼지를 비롯한 사육 가축의 방귀, 배설물에서 나온 탄소도 만만치 않다. 숲을 훼손해 나무가 광합성으로 흡수 고정하는 탄소량도 줄었다.

 
 


유작가님이 무인도에 책 한 권만을 가져갈 수 있다면 선택한 책은 <코스모스 - 칼 세이건>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과학책이며 20세기가 끝나가던 시점까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생명과 우주에 대해 알아낸 중요한 사실을 추려 담은 책
 
인간과 사회, 역사를 보는 관점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책은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통섭: 지식의 대통합 - 에드워드 윌슨,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