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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몰입의 즐거움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도둑맞은 집중력>, <탁월함의 발견>을 읽으면서 다시 보고 싶었던 책이 이 책 '몰입의 즐거움'이다.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아서 빠르게 읽어 본 다음 정리해 둔 노트를 펼쳤는데.. 오히려 질문이 생겨버렸다.
몰입이 뭔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몰입하면 뭐가 좋다고? 
내가 만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첫 장에서 오든의 시를 만났다.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뿐이지만, 그럼 묏자리나 보러 다니든가.

 
첫장의 맨 처음 나오는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는 별 감흥 없이 넘겼다.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는 것인가. 다시 이 시를 만났을 때 '참다운 삶', 그리고 '그것을 바라는 사람'에 오랫동안 눈길이 갔다. 다시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내 기억력을 심하게 의심하게 되었다. 아무리 한 달여 시간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나름 몰입해서 읽었던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새로운 내용들이 모든 챕터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저자의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기까지 앞으로 여러 번 더 책장을 넘겨볼 것 같다. 훗날 다른 깨달음이 있다면 그때 추가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나에게 자극이 되었던 부분을 기록해 둔다.
 
저자는 참다운 삶이란 아까운 시간과 재능을 허비하지 않고 나만의 개성을 한껏 발휘하면서 복잡다단한 이 세상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충만한 생활이라고 전한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물음에 답하기 위해 사회과학(심리학, 사회학)을 수단으로 삼아 현상학*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삶이란?(16p)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경험이다. 경험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시간은 아주 귀중한 자산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할당하고 투자할 것인가를 지혜롭게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고 있을까?
1. 일터에서의 '생산활동'
2. 육체와 육체의 부속에 대한 간수를 위한 '유지활동(가사, 식사, 세면 등)'
3. 생산과 유지 활동에 들어가고 남은 자유시간, 곧 여가시간
 

여가활동의 최고는 학문(21p)

고대 사상가들은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철학자들에 따르면 학문, 예술, 정치 같은 활동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했다. 학교를 뜻하는 단어 'school'은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scholea’에서 나온 것으로 여가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곧 학문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이런 이상은 좀처럼 실현되기 어렵다고 말하는데,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시간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운동과 같은 취미 활동 대신 대중매체, 담소와 같은 것으로 보낸다. 모든 여가 활동 중 사람의 에너지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것은 TV시청이다.

생산, 유지, 여가가 우리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의 정신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정보도 세 가지 주요 기능에서 나온다. 우리가 보낸 하루하루를 모두 더했을 때 그것이 형체 없는 안개로 사라지느냐 아니면 예술작품에 버금가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느냐는 우리가 어떤 일을 선택하고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에 달려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1997년)를 감안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저자는 TV가 인간이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하면서 만들어낸 발명품 가운데 가장 중독성 강하고 흡인력 있는 물건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 자리를 SNS와 OTT가 대체하고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는 주장은 지금과도 동일하다. 저자는 "시청자를 성숙시키는 프로그램보다 자극시키는 프로그램이 많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자아 개발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반박한다.
 

행복,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29p)

행복은 긍정적인 감정의 전형으로 우리가 재산, 건강, 명예를 바라는 것은 그 자체가 좋아서라기보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1960~1990년대까지 미국인의 실질 소득이 두 배 이상 늘었지만 자신이 무척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납득하기 어렵지만, 빈곤의 문턱을 일단 넘어서면 재산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행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생의 노른자위라고 일컫는 행복은 물질적 풍요로만 채울 수 없다는 것이다.

몰입(44p)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한 것으로 운동선수의 '물아 일체의 상태', 신비주의자의 '무아경', 화가와 음악가가 말하는 미적 황홀경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각각 다른 활동을 하면서 몰입 상태에 도달하지만, 그들이 그 순간의 경험을 묘사하는 방식은 놀라우리만큼 비슷하다.
한 시간이 1분처럼 금방 흘러가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여한 없이 쓸 때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일자체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 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나 고난도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가는 행복을 느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며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것이다. 즉,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몰입 없이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고단한 몸을 눕혔을 때, 편안함과 따스한 햇살은 행복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유형의 행복감은 형편이 안 좋아지면 눈 녹듯 사라지기에 외부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

 

왜 몰입이 개인을 성숙시키는가?(45p)

각성상태에서는 실력을 연마해야 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때는 행복감, 만족감을 웬만큼 가질 수 있지만 아직 집중 밀착도가 떨어지며 자신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식 또한 강하지 않으므로 과제의 수준을 높여야 몰입의 상태로 넘어갈 수 있다.
그 밖의 상태에서는 몰입으로 넘어가기 어렵다. 불안, 걱정에 휩싸인 상태는 지금 상황을 극복하기보다 지금보다 덜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물러나려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몰입 경험은 배움으로 이끄는 힘이다. 새로운 수준의 과제와 실력으로 올라가게 만드는 힘이다.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면서 꾸준한 성장의 길을 걸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몰입의 단계로 넘어가기에 권태와 무력감이 너무 강하여 비디오처럼 이미 나와 있는 규격화된 자극으로 우리의 정신을 채우거나 필요한 실력을 닦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집어먹고 마약, 술과 같은 인위적 이완제가 가져다주는 몽롱한 상태로 가라앉는다.

최적의 경험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첫 발을 내디딜 기운조차 없는 경우가 흔하다. 

 
권태와 무력감.. 내 삶의 질을 끌어올릴 만한 명확한 목표와 과제가 있는가?

마지막 몰입의 경험이 언제인가?
 

여가는 일보다 즐기기가 더 어렵다(85p)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쓰는 요령을 모르면 삶의 질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 저절로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목표가 없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의욕과 집중력을 잃기 시작한다. 마음은 흔들리고 불안감을 조장하며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붕괴되는 이런 최악의 무질서 상태(엔트로피*)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불안의 샘을 의식에서 지워주는 자극(도박, 섹스, 술, 마약)에 의존하게 된다. 이것들은 의식에서 벌어지는 혼돈을 짧은 시간 안에 줄여주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허무감과 불쾌감이다.

 

왜 수동적 여가에 쉽게 빠지는가?(88p feat.몰입하기까지 시동에너지가 필요해) 

운동, 취미, 어울림과 같은 활동은 그만큼 까다롭고 어려워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자주 있다. 이와 달리 TV시청과 같은 수동적 여가 활동은 불안을 거의 낳지 않는다. 사람을 이완시키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활동이다.
누구에게나 긴장을 풀고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동적 여가가 자유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편으로 쓰이는 순간부터 문제가 부각된다.

 
 

  • 현상학(11p): 철학의 한 갈래인 현상학은 마음을 가로지르는 의식의 흐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의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30년 동안 심리학, 사회학 같은 사회과학을 수단으로 삼아 체계적 현상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 엔트로피(34p): 슬픔, 두려움, 떨림, 지루함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은 마음속에 ‘심리적 엔트로피’를 조성한다. 엔트로피 상태에 빠지면 우리는 바깥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내부 질서를 다시 세우는데 온통 신경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표에 의식을 가지고 에너지를 제대로 투입해야 한 사람의 경험에 질서가 생긴다. 예측 가능한 행동, 감정, 선택에서 드러나는 이 질서는 시간이 흐르면 개성 있는 ‘자아’로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 행복, 과단성, 민첩성 같은 바람직한 감정은 ‘심리적 반() 엔트로피’ 상태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거나 추스르는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으므로 아무 걸림돌 없이 에너지를 우리가 선택한 과제로 온전히 투입할 수 있다. 의도, 목표, 동기 부여는 심리적 반엔트로피를 조성한다.
  • 빵과 원형경기장(97p): 지배 계급은 몸을 만족시키기 위해 충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마음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사회적 불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과거의 예를 보면, 한 사회가 사회 성원에게 의미 있고 생산적인 직업을 제공할 능력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과도하게 여가에 의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