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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 류시화

'제목에 홀려 예약 구매까지 했는데, 내 소중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이 책 읽는데 다 써버렸다. 그 시간에 기분 좋게 쇼핑이나 했었을 텐데..'
부시맨 버전으로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정리해 본다.
 
명상의 구루들을 벗으로 둔 저자도 삶이 본인을 부수고 삶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작가님이 견디기 힘든 고립감으로 문학 활동을 중단했을 때가 있었을까? 정말일까?
멀게만 느껴졌던 작가님과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졌다.
 
책의 제목 자체가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변수를 미리 고려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화를 내던 나를 반성해 본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13p)

왜 당신이 계획한 인생이어야만 하는가?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내가 생각한 제주가 아니에요. 그래서 무척 실망하고 있어요."

"왜 이곳 제주가 당신이 생각한 제주도여야만 하죠? 자신의 관념 속 제주도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제주를 경험하기 위해 한 달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이곳에 온 게 아닌가요?"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풍경이 너무 평화로운가요, 아니면 견디기 힘들 만큼 변화무쌍한가요? 귤이 너무 시큼한가요, 달콤한가요? 사려니 숲길에 사람이 너무 많은가요, 아니면 반복되는 고독이 싫은가요? 만약 당신이 상상한 것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제주도라면 며칠 못 가서 지루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생각과 기준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더 역동적인 섬이 아닐까요?"

만약 내가 이 세상 떠나며 영혼들의 교차로에서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려고 엇갈리는 한 영혼을 만난다면, 나는 그 영혼에게 말하리라.
"당신이 상상하는 지구 행성이 아닐 거야. 당신이 생각하는 인생이 아닐 거야. 그래서 하루하루가 난해하면서도 설레고 감동적일 거야. 자신의 관념과 기준 속에 갇혀 있지만 않는다면, 당신이 상상한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뜬다면."

 

받아들임과 흘려보냄(110p)

상대방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은 메시지를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돌아서면 나의 가슴과 의지에 따른다. 당신이 누군가와 논쟁한다면 그것은 죽은 자와 논쟁하는 것이다. 누구나 머지않아 죽을 것이기에 무기 같지도 않은 무기로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는 대신, 빠르게 동의하고 자신의 시간을 창조적인 일에 몰입하는 것이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관계법이다.
무의미한 논쟁을 끝내고 삶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논쟁에서 이기는 내공이 아니라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내공이다.

 
받아들임과 흘려보낼 줄 아는 지혜를 가져보자. 감정에 휘둘리기 보다 나의 시간을 창조적인 일에 몰입해보자. 
 

바닷가재는 스물일곱 번 허물을 벗는다(231p)

일상의 삶이 너무 안전하거나 자신을 구속할 때 신화 속 영웅들은 낡은 자아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 나선다.
우리가 탈피해야 하는 '허물'은 무엇인가?
굳어진 생활 습관, 고정관념, 익숙한 방식, 믿음 등이다.
이 허물들은 주기적으로 벗지 않으면 단단한 껍질로 굳어져 성장을 가로막는다.

"불편함과 갑갑함을 느끼는 시간들은 당신이 성장할 시기가 되었음을 알려 주는 신호다. 이 역경을 제대로 활용하면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 아브라함 J. 트워스키

 

자기 앞에 놓인 길을 볼 수 있다면(236p)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사는 법을 배우고, 여행해 나가면서 여행하는 법을 배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토끼 굴 속으로 추락해야 한다.
생각과의 싸움으로 보내기에는 삶은 너무 짧다. 걱정은 상상력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마음보다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마음의 무거움이 자신을 짓누르지 않도록...
사람마다 다른 문제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험에 실패한다.

"자기 앞에 놓인 길을 볼 수 있다면 그 길은 자신의 길이 아니다. 아마도 자신의 길로 여긴 타인의 길일 것이다. 자신의 길은 한 걸음씩 내디디면서 알아가야 한다. 영혼은 그 여행 자체를 좋아한다." - 데이비드 화이트

 
생각과의 싸움으로 보내기에는 삶은 너무 짧다.
마음보다 가볍게 나의 길로 한 걸음씩 내디뎌보자.
 

평범한 내가 특출 난 사람을 이기는 방법(127p)

독특한 흑백 이미지들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표현하는 율스만 사진작가는 수업 첫날 수강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학기 동안 사진의 '양'에 초점을 맞춘 그룹과 사진의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그룹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다. 학기가 끝나고 과연 어느 그룹에서 최고의 사진들이 나왔을까?

율스만은 최고의 사진들이 모두 '양'에 치중한 그룹에서 나온 것을 알고 놀랐다. 이 그룹의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수많은 사진을 찍고, 구도와 조명을 실험하고, 암실에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느라 바빴다. 수백 장의 사진을 만드는 그 과정에서 기술을 연마했다. 실패의 경험들이 모여 재능이 되었다.
반면에 사진의 '질'에 초점을 둔 그룹은 완벽함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하면서 둘러앉아 있었다. 결국 검증되지 않은 이론과 평범한 사진 한 장 외에는 자신들의 노력과 재능에 대해 보여 줄 게 없었다.

행동의 횟수가 행동의 질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완벽함의 적이라고 해야 할까?
글을 쓸 때 벽에 부딪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뛰어난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잘 쓰지 못한다고 절망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글쓰기를 포기한다.
창조는 길고 긴 반복의 결과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집중이다. 반복해서 하는 행위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 특출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의 결과이다. 창조적이 되는 비밀은 '창조적이 될수록 더 창조적이 된다.'는 것이다.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완성하라.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게 두라. 그들이 결정하는 동안 더 많은 작품을 만들라." - 앤디 워홀

 
생각과의 싸움으로 보내기에는 삶은 너무 짧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완성하자.
 

우리 모두는 도움이 필요하다(200p)

이십 대 후반, 뭄바이 근처 아쉬람에서 잠시 머물 때, 나는 여러 가지 문제로 내면이 엉망이었다. 실재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마음이 지어낸 가공의 문제도 많았다. 그 가공의 문제들이 더 가공스럽게 정신을 괴롭혔다. 아열대 태양 아래 있으면서도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처럼 정신이 암울했다. 아침마다 입자 굵은 안갯속을 걸어 아쉬람으로 향할 때면 내가 발견하지 못하는 출구가 과연 존재하기나 한 것인지, 삶을 살아 보기도 전에 이대로 세상으로부터 실종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무엇이 기쁘고 무엇이 슬픈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 심리 상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아쉬람에 있는 수백 명의 외국인 산야신(수행자) 중에서 나 혼자만 마음의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길에 널린 소똥, 개똥, 사람똥을 유독 나만 밟아 싸구려 샌들에 묻히고 다니는 형국이었다. 나만 제외하고 모두가 평화롭고, 자유롭고, 충만해 보였다. 다정하게 포옹하며 서로를 어루만져 주고, 번민과 고통을 초월한 미소들은 닮고 싶어질 정도였다. 음악이 들리면 다들 자연스럽게 춤추었으며, 가부좌를 하고 명상하는 모습들은 깨달음에 이미 도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눈에 보이는 날개만 없을 뿐 다 천사들이었다. 반면에 나는 부러진 날개를 철사로 묶어 땅에 끌면서 스스로 왕따당한 아이처럼 걸어 다녔다. 내 그림자조차 나에게 지쳐 있었다.

근처 카페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놀랍게도 아쉬람 안에서 내가 가장 동경한, 누구보다 우아하고 평화로운 미소를 짓던 사람이었다. 내가 그녀처럼 가식 없이 밝을 수 있다면, 그녀처럼 마음의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세상으로 돌아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었다. 그런 그녀가 "내 삶은 엉망진창이야. 차라리 이대로 끝내는 게 나아." 그녀의 아픔과 고통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깊이 공감하며 한 번도 빨아 입지 않은 옷소매로 그녀의 눈물 콧물을 흥건히 닦아 주었다. 그녀의 슬픔이 전염되어 나까지 가슴께가 뻐근했다.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나는 큰 해방감을 느꼈다. 나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만 우울하고, 나만 불행하고, 나만 소똥 밟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여행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었다. 단지 누구는 더 멋있게 꾸미고, 누구는 더 빛나 보이고, 누구는 더 긴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타지마할 배경의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웃는다고 해서 슬프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이 내가 일종의 포모 증후군에서 놓여난 첫 순간이었다. 다들 잘나가고, 일 잘하고, 자유롭게 삶을 즐기고 있는데 자신만 뒤쳐지고 소외되어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 깨달음이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우리 모두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다. 때묻은 옷소매일지라도 눈물을 닦아 줄 이가, 아무 감정적 고통이 없고 삶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왜 먼 나라의 명상 센터에 와서 있겠는가.

삶은 한 가지 장르로 나뉘어질 수 없다. 희극, 비극, 낭만, 스릴러, 공포극, 모험극이 한 편의 소설에 혼합되어 있다. 자신에 대한 절망 없이는 자신에 대한 사랑도 없다. 절망은 아름다움으로 가는 통로가 된다.

 
다시 내면이 엉망이 되었을 미래의 나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