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
몇 해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내 마음을 움직였던 문장이었다. 책의 속지에서 과거 나의 필사를 만나 반가웠지만, 다시 만난 저 문장은 크게 감동적이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며 책 안에서 다시 저 문장을 마주했을 때 '가슴 뛰는 순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중요하지 않은 무의미한 일들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년에는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이 며칠이나 있었는지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았다.
가슴 뛰는 순간(265p)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 - 마야 안젤루, 시인
숨 막히게 사랑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숨 막히게 몰입한 순간, 삶과 숨 막히게 접촉한 순간이, 그것이 꼭 거창한 순간일 필요는 없다. 맨발로 비를 맞는 순간, 섬에서 붉은 보름달을 감상한 순간, 히말라야 능선에서 눈보라 날리는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당신은 어떤 순간들로 채워져 있는가? ‘가슴 뛰는 순간’, 스스로 감동하는 순간들, 삶을 자신의 가슴에 일치시키는 순간들을, 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이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은 당신의 가슴에 담긴 것들이다.
저자는 여러 번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책장을 모두 넘길 때쯤 그 의미를 조금은알 수 있었다. 저자는 <오디세이아>를 처음 읽었을 때, 이상향이 그 목적지가 아니라 주인공이 고난을 헤쳐가는 내용임을 알고 놀랐다고 말한다.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성장이라는 것이다.
삶, 경험 자체가 목표이다(273p)
주저하지 말고 경험에 뛰어들라. 문제에 대한 해답을 타인에게서 빌리려 하지 말고 그 문제를 살아야 한다. 관념과 공식에서 벗어나 이 삶을 최대한으로 경험해야 한다. 이해는 머리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은 어느 곳을 가고 있든 내가 집으로 향하고 있음을, 인간은 모두 자신의 집에 이르기 위해 여행하고 있음을, 그 긴 여정이 곧 진리 발견의 길이고 자아실현의 과정이다. 목적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여정이며, 그 여정이 주는 성장이다.
모든 여행이 자기 성찰의 길로 불리는 이유는 목적지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험한 산맥을 넘고, 태양과 눈비와 추위를 견디고, 때로는 우회하고, 때로는 공동 숙소에서도 자야 하는 전 과정이 주는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이름난 장소가 보잘것없는 곳이든 웅장한 곳이든 그 목적지들이 가진 목적은 우리에게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선물하는 일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을 경험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마음이 담긴 길(42p)
불법체류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뉴욕으로 떠나자 '꼭 그래야만 하는가?' 하고 사람들은 질문했다. 두 달 만에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인도의 명상 센터로 가자 '차리리 뉴욕에 있을 것이지' 하면 혀를 찼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귀포로 이사하자 사람들은 계절마다 놀러 오면서도 외롭겠다고 했다. 두 해 만에 서울로 돌아오자 그 좋은 곳을 왜 떠났느냐며 아쉬워했다. 정상이 아니라는 말도 자주 들어야만 했다. 인도에만 자꾸 가자 사람들은 내가 원하지도 않는 유럽에도 가고 중국에도 가라고 조언했다. 해마다 인도를 계속 가니 인도가 아니라 비로소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의 <인생 수업>을 번역하자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인도 기행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잠언 시집도 출판사들로부터 거절). 그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상업적인 작가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그 많은 우회로와 막다른 길과 무너뜨린 과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길을 가는 사람'이다. 공간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도 길이다.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라고 하는데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방황하며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찾아 나서는 존재를 가리킨다. 동양에서는 구도 여정 자체를 '길(道)'이라 했다. 우리는 항상 선택 앞에 놓인다. 한 가지 길의 선택은 가지 않은 많은 길의 포기를 의미한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좋은 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어떤 길도 수많은 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너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단 스스로에게 이 한 가지를 물어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무의미한 길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 너는 그 길과 하나가 될 것이다." - 돈 후앙, 야키 족 인디언
죽는 날까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삶이다. 내가 옳다고 느끼는 길을 정답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나의 인생이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든 사람이 당신의 여행을 이해하리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길이지 그 사람들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답이 아니라 자신의 답을 찾는 것이 호모 비아토르이다.
작가님은 연인이나 가족, 부부 사이에 소리를 지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일깨우는 우화를 소개한다. 화는 마음을 닫게 만들고 상대방을 멀어지게 만든다. 다음번에 화가 날 때 꼭 이 우화를 기억해야겠다.
화가 나면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24p)
사람들은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 거리만큼 소리를 지른다. 반면에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부드럽게 속삭인다. 두 가슴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에 큰소리로 외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두 가슴의 거리가 사라져서 아무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는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말없이도 이해하는 것이다. 갈등의 10퍼센트는 의견 차이에서 오며, 나머지 90퍼센트는 적절치 못한 목소리와 억양에서 온다는 심리학 통계가 있다.
갈등을 유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뜻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할 때 목소리가 커질 경우가 있다. 이것이 가장 나쁜 예의라고 작가님은 지적한다. 옳은 길은 하나가 아니라 각자마다 다양하게 많은 길이 존재한다는 지혜를 가져보자. 비평이나 조언 없이 순수하게 상대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보자.
나쁜 예의(247p)
인간에 대한 가장 나쁜 예의는 ‘너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각자의 내면에 훌륭한 교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자신이 가진 유일한 연장이 망치일 때는 모든 대상을 튀어나온 못으로 보게 된다.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그 길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그 길은 많은 옳은 길 중의 하나일 뿐이다. 행복한 관계는 비평이나 조언이 아니라 상대방의 ‘순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
나는 누구인가(37p)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닐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나를 만나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라 자신들이 상상하고 추측하는 나를 만난다. 나는 타인이 말하는 '누구여야만 하는' 나가 아니며 '어디에 있어야만 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살아 있는 존재이므로 매 순간 다른 나이고, 어디에 있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나이다. 따라서 타인이 생각하는 나나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자신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불행과 불만족은 시작된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가진 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게 된다. 우리 자신은 하나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변화하는 무수한 모습들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오해받는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봄마다 껍질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나무와 같다. 우리의 정신은 끊임없이 젊어지고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 <즐거운 지식- 니체>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의 스토리는 모른다. 그들은 당신이 해 온 것들은 들었지만, 당신이 겪어 온 일들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당신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당신 자신의 생각이다. 때로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최고의 것을 해야만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이 아니라." - 작자미상
열 살 무렵에 급성 신장염을 앓아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음이 늘 작가님 옆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내용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우울한 운명론자가 되기도 했지만, 인생을 더 전실하게 살게끔 만든 원인이 되었다고 밝힌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라는 말은 단순한 잠언 이상이었다고.
죽음 앞에서(150p)
‘이번 책이 나의 마지막 번역서가 될 것이다’, ‘나의 마지막 시집이 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뒤로 신장염은 나았지만,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히말라야에서의 눈사태, 네팔 절벽에서의 트럭 사고, 구자라트 대지진, 바라나시 폭탄 테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 내 삶은 덤의 덤, 덤의 덤의 덤이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물여덟 살에 총살을 선고받는다. 방아쇠가 당겨지려는 마지막 순간, “집행 중지!”를 외친 병사의 신호로 죽음 직전에 자유인이 되었다. 같이 밧줄에 묶여 있던 친구 하나는 이 일을 겪은 후 미쳐 버렸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의 나락에서 갑자기 부활한 그 순간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남은 생을 문학에 바쳐 ‘이미 죽은 사람들이 깨달은 것’을 표현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죽음의 집의 기록>,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 불후의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면 삶이 그만큼 더 소중해진다. 무의미한 고민이나 일들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더 절실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가장 창조적인 행위는 삶의 매 순간을 붙잡는 일이다.
저자는 자신의 허약한 영적 수준을 고백하며 마음이 지어내는 이야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마음의 이야기는 지금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실제보다 상상에 더 많이 고통받게 만든다고 한다. 천연두 환자의 병문안을 다녀온 뒤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망률이 매우 높은 전염병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작가님은 걱정 속에 며칠을 보낸다. 두려움은 급속도로 번져가며 병의 증세가 심각해지고 나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할 수 있을지,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자신을 간호해 줄 친구가 있을지, 마침내 갠지스강 옆의 화장터로 옮겨지는 상상을 하면서 병문안 다녀온 자신을 탓한다. 다행히 오해는 풀리게 되었고 마음이 다음 이야기를 지어내기 전까지 '잠시' 마음이 맑아진다.
마음의 이야기(116p)
나를 번뇌에 빠뜨리고 앞당겨 걱정해서 지금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조건과 형상을 부여해 강력한 힘을 갖게 하는 ‘마음이 지어내는 이야기’이다. 자기 멋대로 꾸며낸 이야기 속에 스스로를 가두기 전에 마음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나가기 전에 알아차려야 한다. 두려움, 욕망, 불안을 연료로 마음이 지어내는 이야기를 알아차리고 마음을 챙겨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만큼 큰 기쁨과 평화는 없다.
천연두로 알았던 그 환자는 수두였으며, 대부분 병이 진행되면서 자연적으로 좋아진다. 내 등에 난 것은 사소한 부스럼이나 땀띠에 불과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를 오가느라 약간 더위를 먹었을 뿐이며, 과도한 신경성 복통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지어낸 이야기는 나의 허약한 영적 수준을 드러내며 밤에 꾸었던 꿈처럼 사라졌고, 잠시 마음이 맑아졌다. 다음 이야기를 지어내기 전까지는.
삶의 기술(204p)
작은 물병을 손에 쥐고 팔을 앞으로 뻗으면 짧은 시간 동안에는 가볍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10분, 20분이 지나게 되면 더 이상 들 수 없는 것처럼 문제는 물병의 무게가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는가이다. 과거의 상처나 기억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래 들고 있을수록 그 무게를 더할 것이다.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오래전에 놓아 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버려야 한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지만 쉽게 책장을 넘길 엄두가 나지 않는 고전의 리스트를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