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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

 

여행길에 오르며 류시화 작가의 산문집을 챙기는 것이 어느새 필수 준비물이 되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서 책을 펼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여행지에서 시간이 생길 때마다 책을 꺼내 읽는 것은 꽤나 매력적이다. 1997년 출간된 이 책은 작가의 비교적 초기 작품이다. 작가님의 젊은 시절의 향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깨달음을 준 훌륭한 스승들의 이야기, 인도인들의 어록들이 담겨 있는데 1년 넘게 요가를 배우고 있어서인지 좀 더 공감이 가는 것만 같다.
 
갑자기 모든 힌디어 단어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인도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모국어처럼 들리기 시작하며 전생의 인연을 만나기도 하고 모래를 나비로 바꾸는 눈이 맑은 고승의 이야기 등 여러 체험들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상상이거나 최면에 걸린 환상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인도여행을 하면서 생의 허무감과 번민을 떨치려는 깊은 진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무가내로 잘난 체를 하며 적선에 의존하면서 신이 자신을 먹여 살린다는 사기꾼 구다리바바*(머리에는 소똥을 묻히고 다니는)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인도라는 나라가 참 궁금해진다.
 
- 구다리바바(구다리: 헝겊, 바바: 종교적아버지 - 누더기를 걸친 탁발승)
 

가슴으로 만나야 한다(15p)

여행 중에 줄곧 사진을 찍는다면 카메라 메모리카드에 그 풍경들이 찍히겠지만, 가슴에 찍힐 경험들은 많이 놓치게 될 것이다.

‘가슴으로 만나야 한다.’

가슴으로 만날 때 당신은 모든 장소에서 자주 웃고 자주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인도는 인구 10억의 미로 속을 헤매는 것과 같다. 반짝이는 보석들이 감춰진 미로 속을. 그것들은 가슴을 가진 자에게만 발견된다. “성지 순례자의 물병은 성지를 모두 순례했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물병으로 남아 있다.”

‘너는 무엇을 배웠으며 인생관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여행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여행을 동경하는 이유(37p)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일 테니까.

 

광야에 홀로 선 외로운 문명인(56p)

한국에서 가져간 장약으로는 인도의 설사를 이겨낼 수 없다는 걸 몰랐을 때 작가는 버스 운전사에게 멈춰달라고 요청한다. 몸을 가릴 만한 장소가 없는 허허벌판의 황무지에서 내리게 된 저자. 차 안에 탄 인도인들 모두가 일제히 작가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 결국 덩치 크고 장발을 한 사람이 지팡이만한 한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바지를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버스 안의 인도인들은 그 상황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다. 민망했던 저자는 버스로 돌아와 큰소리친다.

“인도인들은 왜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들판이나 강변에 마구 볼일을 보니 더럽기 짝이 없잖아요. 화장실을 더 많이 지으면 한결 깨끗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자연 속에서 자연적인 일을 처리하는데 뭐가 나쁘다는 겁니까? 왜 당신들은 성냥갑만 한 공간 속에 숨어 냄새를 맡아 가며 똥 위에 똥을 누고 있지요? 우린 아침마다 대자연 속에 앉아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며 볼일을 봅니다. 그것이 우리에겐 최고의 명상이지요.”
“세상은 점점 위선적이 되어 버렸어요. 무엇으로든 자신을 가려야만 문명인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대자연 속에 앉아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며 하는 명상'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더 궁금해졌다. 정말로 인도인들은 이런 생각을 평소에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들도 많이 달라졌을까? 의문이 남는다. 저자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인도여행을 생각해보지만 계획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세 가지 만트라(68p)

세 가지의 만트라를 기억한다면 그대는 다른 누구도 스승으로 섬길 필요가 없다. 그대의 가장 완벽한 스승은 그대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1.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는 말라.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2.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3.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내 스스로 감은 밧줄(83p)


“내 몸에 무엇이 감겨져 있나? 밧줄이 나를 묶고 있지. 그리고 이 밧줄은 내 스스로 감은 것이야.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임을 잊지 말게. 그대만이 그대를 구속할 수 있고 또 그대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유를 찾는 거야. 그대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게.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이야. 먼저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결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어.”

 

나마스카(227p)

빡빡한 일정으로 뭄바이를 여행하는 저자에게 숙소옆 가게 주인이 묻는다.
“나마스카, 오늘은 어딜 갑니까?”
“너무 돌아다녀서 입술이 다 부르텄어요. 이젠 볼 만큼 봤고 하니까 오늘은 그냥 인디아 게이트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구경할래요.”
“이제야 정말로 여행하는 법을 터득했군요. 좋습니다. 나도 함께 갑시다.”

해변가에 걸터앉아 하루종일 행인들을 구경했다. 피리를 불어대는 코브라 아저씨, 시골에서 올라온 인도인들을 보았다. 오후에 날이 더워졌을 때 근처 리어카에서 코코넛 한 개를 나눠 마시고, 아라비아해의 미풍을 받으며 저녁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가게 주인이 묻는다.
“나마스카, 오늘은 어디로 갑니까?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야죠. 꼭 뭘 구경하러 온 건 아니니까요.”
가게 주인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디로 가든지 너무 자신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 마시오. 한 장소에 앉아서도 많은 걸 볼 수 있으니까요. 좋은 여행이 되길 빌겠소. 그럼 잘 가시오. 나마스카!”

나마스카는 인도인들의 인사말로, ‘당신 속의 신에게 절을 한다’는 뜻이다.

 

노 프라블럼(261p)

인도를 여행하는 중에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바로 ‘노 프라블럼’이다. 돈이 없어도, 자전거가 펑크 나도,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어도, 기치가 무한정 연착을 해도 노 프라블럼이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정해져 있는 대로 모든 일이 잘 진행될 텐데 왜 스스로 안달하고 초조해져서 자신을 괴롭히냐는 것이다.

한 번은 뭄바이에서 여권을 분실한 적이 있었다. 인도인들이 가장 많이 해준 충고가 ‘노 프라블럼’이었다. 여권을 잃어버린 것만도 충격적인 일인데 스스로 불안한 생각을 만들어 자신을 괴롭힐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마음을 평화롭게 가지라는 것이었다.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진 않는다는 논리가 노 프라블럼 속에 담겨 있다. 여행자에게 필수품인 여권을 분실하고서도 마음을 평화롭게 가질 만큼의 수준에 나는 아직 도달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불안과 초조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결국 여권은 배낭 속 비상주머니 속에서 보란 듯이 발견되었다. 애초부터 노 프라블럼이었던 것이다.

노 프라블럼 명상법은 결론적으로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로 결코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 떨어졌는가? 노 프라블럼이다. 대학에 갖다 바칠 등록금으로 인도 여행을 떠나면 몇 년을 귀족처럼 다니며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가? 노 프라블럼이다. 그 사람은 이미 그런 식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도록 수천 년 전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을 훌륭히 해낸 사람이고 그 배역을 당신 앞에서 해 보인 데는 분명히 어떤 교훈이 있을 것이다.

 

순례자의 물병(243p)

성지 순례자의 물병은 성지를 모두 순례했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물병으로 남아 있다. 세속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