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가불 선진국 - 조국
오프라인#7
2024. 4. 26. 19:00
2년 전 즈음, 조국 교수님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응원차 구매를 해둔 채로 지내다가 '디케의 눈물'을 읽고 나서야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다.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정리해 두셨을까? 우리는 무엇을 가불 했을까?
책은 주택 및 지대 개혁, 지방 분권과 지역 균형, 노동인권과 민생 복지, 경제민주화등의 챕터들로 구성되어 있다. 법학자로만 알고 있던 교수님의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점들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11p)
1인당 국민총소득 GNI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아래지만, 2020년 3월 OECD 발표에 따르면 구매력평가지수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 GDP은 2017년부터 일본을 추월했다. GDP를 인구수로 나눈 1인당 명목소득에서는 일본이 한국을 앞서지만, 물가와 환율을 고려하는 구매력 평가지수 1인당 GDP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 S&P, 피치 Fitch, 무디스 Moody's 등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일본보다 2단계 정도 양호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2020년 한국 국민의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1인당 GNI는 G7 구성원인 이탈리아를 넘어섰다. 세계은행 World Bank 홈페이지에 게재된 국가별 1인당 GNI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3만 2,860달러, 이탈리아는 3만 2,200달러였다. 1960년대 이탈리아의 GNI는 한국의 10배였다. 이탈리아 여행을 간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문화유산에 찬탄하고 돌아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로 표상되는 로마제국의 유산은 지금도 대단하다. 그러나 로마나 나폴리 등에서 벌어진 쓰레기 대란을 접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탈리아 국민이 사는 건물에 설치된 느리고 낡은 승강기를 경험하면 답답함을 느낄 것이고, 만연한 소매치기를 경험하면 화가 날 것이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강한 나라이지만, 보통의 한국인이 원하는 사회제도를 가진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은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 회의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영국은 그동안 G7을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주의 10개국(Democracy 10, D10)'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G7에 호주, 인도, 한국 세 나라를 더하여 10개국 협의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D10 구성에 동의하며 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D10은 국제정치 역학에서 반중 공조 전선을 구축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국제정치 차원에서 한국이 구성원으로 거론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한국은 2016년 7월 국제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 21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기존 선진국이 아닌 신흥국 중 파리클럽에 가입한 최초의 나라였다. 그리고 2018년 한국은 1인당 GNI가 3만 달러가 되어 '30-50 클럽'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인구 5,000만 명이 넘으면서 한국보다 앞서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넘은 나라는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섯 나라뿐이다.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선진국이 된 것이다. 1964년 UNCTAD가 만들어진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격상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소프트 파워를 가진 나라, 한국(16p)
한국은 이제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가 창출한 개념인 '소프트 파워'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2021년 글로벌 소프트 파워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경제력, 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외에도 '매력'을 가진 나라가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보험 서비스와 치안, 여권파워와 전자 정부 발전 지수, 그리고 문화 강국 BTS,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등)
[눈 떠보니 선진국 - 박태웅]
BTS는 한국어로 부른 노래로 빌보드 1위를 거뜬히 해낸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는 로컬이잖아"라고 말하며 천연덕스럽게 감독상과 작품상을 포함해 4개의 아카데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2021년 1월 7일 기준 6만 7천 명인데, 같은 기간 영국은 죽은 사람 숫자가 7만 8천 명이다. 미국은 2천만여 명의 확진자에, 사망자는 36만 5천여 명, 2차 대전 때 죽은 미군 숫자보다도 많다.
OECD는 "한국은 효과적인 방역 조치로 회원국 중 GDP위축이 가장 적은 국가"라고 설명했다. 오바마를 비롯해 선진국의 많은 지도자가 한국을 본받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중국의 엄청난 물량 공세에 몇 년을 고전하던 조선 산업은 기술력 우위를 입중하며 액화천연가스선, 초대형 원유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선들을 싹쓸이해 지난해 연말에만 12조 5천억 원어치를 수주하며 중국을 저만치 떨어냈고, 전기차 시대를 맞은 한국의 배터리와 반도체는 하늘로 치솟고 있다. 한국의 경제 규모(GDP기준)는 세계 9위로 올라섰고, 우리 앞에는 이제 여덟 나라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선진국이 된 것일까?
가불 선진국(20p)
나는 박 의장이 던진 질문 "그래서 우리는 선진국이 된 것일까?"에 대하여 긍정의 답을 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사회권'을 강화하는 사회, 경제적 제도 개혁이 긴급함을 말하고자 한다. 풀어 말하면 노동, 주거, 복지, 생계, 의료 등의 분야에서 사회, 경제적 약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말한다.
선진국 대한민국은 사회,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급, 계층, 집단의 희생에 기초하여 이루어졌고,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칭호는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미리 당겨 받은 칭호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은 '가불 선진국'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식민지,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겪은 후 선진국이 되었음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러나 충분한가? 아니다. 외연적 발전을 넘어 '내포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 '국뽕'을 넘어 선진국 대한민국에 필요한 사회, 경제적 제도 개혁을 고민해야 한다. 심각해지는 자산 및 소득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지속적 발전과 국민 통합은 어렵다. 확보된 '자유권' 보장은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권' 보장을 '자유권' 보장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 '가불'했던 '빚', 그래서 여전히 남아 있는 '빚'을 갚을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116p)
보수를 칭하는 당과 언론은 "종부세 폭탄", "종부세 공습" 운운하지만, 종부세 대상자는 국민 중 최상위 2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며, 이 중 절반은 다주택자다. 즉, 2021년 주택분 종부세 고지 인원은 94만 7천 명, 고지 세액은 5조 7천억 원으로 전 국민의 98퍼센트는 과세 대상이 아니며, 이 가운데 1가구 1주택자는 13만 9천 명으로 고지 세액은 0.2조 원에 불과했다. 주택분 종부세 고지 인원의 51.2퍼센트, 약 48만 5천 명인 2주택 이상 보유 다주택자가 전체 고지 세액의 47.4퍼센트인 2.7조 원을 부담한다. 그리고 2021년 주택분 종부세 5조 7천억 원 중 4.4퍼센트는 개인이 아니라 법인이 낸다. 이는 기업 업무에 필요하지 않은 투기 목적의 법인 주택이 매우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기 보유 고령자에 대한 공제, 부부 공동 명의 1주택 특례 인정 등 종부세 부과 기준은 이미 완화된 상태다.
예컨대 2021년 기준 시가 20억 원 아파트의 종부세는 최대 125만 원이고, 시가 20억 원 아파트의 소유자가 현재 70세, 보유기간 10년인 경우에는 최대 25만 원이다. 2022년 벽두부터 '멸공' 소동을 일으킨 후 사과한 정용진 부회장이 소유한 한국 스타벅스 커피 중 카페라테 가격이 5,100원 정도다. 주 5회 한 잔씩 마시는 것으로 계산하면 1년에 123만 원 정도 든다. 시가 20억 원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이 이 정도 세금을 부담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2022년 1월 18일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 백만장자 단체인 '애국적인 백만장자들'과 '인류를 위한 백만장자들' 등에서 활동하는 102명은 코로나19 위기와 빈부격차 극복을 위해 부자에게 '누진적 부유세'를 부과할 것을 촉구했다. 이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종부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종부세는 최상위 2퍼센트 만을 겨냥하는 부유세로 부의 재분배에 기여하는 세금이며, 다주택자 또는 투기 목적 주택을 보유하는 법인에게 주택 처분을 압박하는 세금이다. 이 세금은 이를 도입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적 의도대로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2008년 9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종부세를 폐지하려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종부세는 "주택 가격 안정이란 측면에서 볼 때 그 어떤 주택 관련 규제보다 더 효과적인 대책"이며, "조세 부담의 공평한 분배라는 측면에서도 다른 어떤 조세보다 뛰어나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종부세 부담이 자방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이 역시 과장이다. 2021년 11월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세종시 거주민 1만 1천 명이 종부세 납세 고지서를 받았는데, 세종에서 1가구 1주택자 기준 종부세 부과 기준은 공시 가격 11억 원(시세 16억 원) 이상 주택은 겨우 82가구였다. 그리고 이 82가구 외 세종 시민이 종부세를 내는 이유는 세종 이외 지역, 특히 고가 주택이 많은 수도권이나 인근 대전 지역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부세가 폐지되거나 무력화된다면 집값은 다시 뛰고 자산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최상위 2퍼센트에 부과되는 종부세를 없애면, 줄어든 세수는 98퍼센트의 국민이 채워야 한다.
그리고 종부세가 재산세로 통합이 되어버리면 지역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국세'인 종부세와 달리, 재산세는 '지방세'이므로 서울에서 걷은 재산세는 서울에만 쓸 수 있다. 종부세가 있어야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역을 위해 국세를 쓸 수 있다. 현재 종부세의 약 75퍼센트가 비수도권에 교부되어 국토 균형 발전과 지방재정 확충에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종부세와 재산세의 통합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재산세는 토지, 건물 같은 '물건'에 부과되지만, 종부세는 '보유자'에 부과되기 때문이다. 구재인 세무사는 종부세를 "세계가 부러워할 K-세금"이라고 평가했다.
기본소득(165p)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했다. 부자, 빈자 가리지 않고 똑같이 소멸성 지역화폐로 기본 소득을 지급한다는 구상이다.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은 지역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재원은 재정 구조 개혁과 예산 우선순위 조정 등 외에 국토보유세 신설을 통하여 확보한다. 구체적 일정은 임기 개시 이듬해인 2023년부터 1인당 25만 원식 1회 지급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임기 내에 최소 4회(연 1인당 100만 원)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9세부터 29세까지의 청년 약 700만 명에게는 보편적 기본소득 외에 연 100만 원을 지급한다(총 200만 원).
기본소득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다. 로봇과 AI기술의 발전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자 노동 소득 비중이 하락하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다. 그에 따라 수요 부족이 구조화되어 저성장이 고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대선 핵심 공약으로 '빈곤과의 전쟁', '김종인표 기본소득'을 내세우려 했다. 김종인 안은 기존의 현금 지원 제도를 통폐합하여 중위소득 50퍼센트 이하 계층에 기본적 소득수준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윤석열 캠프를 떠난 후 이 정책은 사라졌다.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이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면, 김종인 위원장의 기본소득은 '선별적 기본소득'이다. 당내 반론이 많아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하지는 않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청년 소득'을 먼저 시행하면서 단계적으로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적으로 현명한 선택이다. 이재명 후보가 생각하는 농어민과 청년의 범위와 김종인 위원장이 생각하는 중위소득 50퍼센트 이하 계층은 교집합이 클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이냐 선별적 기본소득이냐 하는 이론적, 정치적 논쟁은 그만두고, 실현 가능한 대상부터 바로 실시하는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지지자인 최배근 교수도 "특정 연령층에 먼저 도입할 수도 있고, 현금 대신 일부를 지역화폐 등을 도입하는 것도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라고 하여, 단계적 접근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쟁점이 있다. 기본소득을 모든 시민에게 제공할 경우, 국가가 제공하는 기존의 복지, 공공 서비스가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다. 이러한 보편적 기본소득의 경우 부의 재분배 효과도 낮다.
김두관 의원의 '기본 자산' 제안이 잊혀 아쉽다. 김 의원은 신생아 때부터 1인당 3천만 원의 기본 자산을 지급하고, 기본 자산 예금액에 대한 예금이자 금리는 연 4퍼센트 단일 금리를 적용하도록 하는 '기본 자산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했다. 방법은 다르지만 이용우 의원이 대표 발의한 '청년 기본 자산 지원에 관한 법률'도 같은 취지다. '청년 기본 자산' 기획의 내용은 출생 시점부터 청소년기까지 월 20만 원을 국가가 적립하고, 적립금 통합 기금 운용을 통해 성인(18세)이 되었을 때 약 6천만 원의 기본 자산을 마련하며 고등교육, 주거, 창업 등 용도에만 한정 지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자산 제도가 안착되면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서게 되는 출발선이 상당 수준 같아질 것이고, 청년 빈곤이나 저출산 문제도 크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기본소득, 신복지, 기본 자산 등의 구상과 계획을 상호 배제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현 단계 국민의 필요와 국가 재정을 고려하여 적정하게 절충, 조합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82년생 김지영(그리고 이대남, 194p)
성별 임금격차, 여성의 '이중 근무(가사 노동)'와 '삼차 근무(노부모 부양)' 현실 등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 차별 현상에도 불구하고, 20대 남성 사이에는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인식이 상당하다. 천관율 기자와 정한울 연구원 공저의 책 제목처럼, 이대남 사이에는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이 자리 잡은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부모 세대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여성에게 밀린 경험을 했고, 여성은 하지 않는 군 복무를 해도 아무 보상이 없고,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어려운 현실은 계속되고, 게다가 왕왕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받으니, 화가 나는 것이다. 이대남의 보수화는 이대남 탓이 아니라, 기성세대 탓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워마드', '메갈리아' 등 '래디컬 페미니즘'의 등장은 젠더 대립을 격화시켰다. 래디컬 페미니즘이 무차별적으로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고 공격했다면, 이대남이 많이 활동하는 '남초 커뮤니티'는 모든 페미니즘을 래디컬 페미니즘과 동일시하며 비판했다. 이러한 공방 속에 페미니즘은 '남혐'과 같은 뜻으로 곡해되어 유통되었다.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는 이대남의 표를 얻기 위하여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유승민, 하태경 후보도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대선 후보의 성별 갈라치기 전략은 참으로 저열하다.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정치인인 신지예 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영입했던 윤 후보가 지지율이 폭락하자 신 대표를 내보낸 후 여가부 폐지를 공약한 것도 마찬가지다.
첨예한 갈등을 조정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방의 주장만을 수용하는 대통령 후보, 정부 조직 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법 개정 사안을 SNS에 툭 던져버리는 후보는 자격 미달이다. 정부는, 그리고 정치는 엄존하는 여성 차별 현상의 개선과 이대남이 느끼는 고통과 불안의 해소를 양자택일적으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 정책과 예산으로 하나하나 조정하면서 국민 통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고 노회찬 의원님의 후원 회장을 했던 조국 교수님을 생각하면 준수한 외모의 서울대학교 법학 교수님의 인자한 인상이 떠오른다. 학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오시며 논문 피인용지수가 가장 높은 능력 있는 교수님에게 어느 날 '멸문지화'의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온다. 이 책을 구입한 2년 전에는 아무도 교수님이 정치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의 당대표로 비례 의석수 12석을 차지하며 제3당이 됨)
개인적으로 교수님은 왜 검찰, 언론의 조국펀드에 관한 황당무계한 악선동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가족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것에 자성하는 태도를 갖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 답을 찾았다.
(6p)
사실과 법리 판단에 대하여 심각한 이견이 있지만,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족이 검찰 특수부에 불려가 수사를 받고 결국 구속 기소되어, 재판에 출석하고 선고를 받는 일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매번 생살이 뜯기는 것 같습니다. 2019년 사태 발발 이후 이런 고통은 계속되고 있지만, 음양으로 위로와 격려를 계속 보내주시는 시민들 덕분에 견디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자로 살다가 잠시 관직을 맡고는 '위리안치'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홀로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봅니다. 관직을 맡았던 동안 읽지 못한 책을 읽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귀양지 강진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폐족으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밖에 없다." 그리고 그동안 정리하지 못한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씁니다. 그래야만 200여 년 전 손암 정약전의 말처럼, 무서운 흑산이 희미하지만 빛이 있는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